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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복지는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 <프레셔스> 내가 본 영화

교육과 복지는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 <프레셔스>

오랜만에 묵직한 여운의 영화를 보았다. 도저히 헤어나지 못할 철창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클라리스(가보리 시디베 역)를 보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짐승과도 같았던 아버지, 그리고 그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딸을 대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망상에 젖을 수밖에 없는 클라리스. 어쩌면 이 지옥과도 같은 악몽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망상에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클라리스는 공주가 되기도 하고 연예 스타가 되기도 하고, 백마 탄 왕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깨어나면 눈앞에 현실을 보게 되고, 관객인 나로서도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성폭력의 진실을 접하게 되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모르는 이에게 당하는 경우보다 지근지처 이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날 짐승의 추악함을 인간에게서, 그것도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목격하는 순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다보니 이 민망하고 폐륜적인 사실을 인간 스스로가 은폐하려는 본능이 발현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도 딸아이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해라, 택배 아저씨를 조심해라, 험상궂은 아저씨를 조심해라 등등 모르는 타인을 경계하라는 교육을 시켰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차마 가까운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내 입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난맥상을 어찌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는 본능이라는 말로 포장해버리는 저 남자들의 폭력성에 있다. 

클라리스가 레인(폴라 패튼) 선생에게 가정사를 진술하며 눈물을 흘릴 때 후련한 마음도 들었지만, 너무 슬펐다. 상담사(머라이어 캐리)에게 고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먹먹했지만 감당해야 할 순간이다. 엄마 메리(모니크 역)가 아빠의 만행을 진술할 때는 우리가 몰랐던 더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되고, 상담사나 클라리스도 할 말을 잃었다. 3살 때부터 성폭행이었다니.........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레인 선생이 클라리스의 잠재적 능력을 깨우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문제는 시스템의 변화 없이 해결될 수 없다. “Each one Teach one(맞나?)”이라는 대안학교가 아니었다면 레인과 같은 선생의 설 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대안학교가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별 인간은 모두가 소중하고 우주로부터 온 선물이다.(영화 초반 타이틀 시퀀스에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획일적인 교육, 자본주의에 부역하는 교육은 상위 20%에게만 더 넓은 기회를 부여한다. 나머지 학생들의 살아 있는 재능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 영화는 묻고 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혹은 어떤 시스템으로부터 단절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다. 직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맞서야 할 상대가 너무 거대해서 주저앉는 것이 보통이다. 안주라고 힐난해도 어쩔 수 없다. 개인이 바위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때론 타협하고, 아주 조금씩 개선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 특히 부모와의 단절(독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은 경제적 자생력이 관건이다. 혹은 그 잠재력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단절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복지시스템은 필연이다. 무료로 먹여주고 베풀고 심지어 돈을 주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제도의 이면을 돌아봐야 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전제다. 나의 불투명한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이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계층을 배제했을 때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개인의 잠재력까지 배제될 경우, 우리는 그 잠재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풍요를 맛볼 수 없게 된다. 복지는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수단이다. 적어도 굶지 않도록 하고 잘 수 있도록 하고 병으로부터 죽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보편적 윤리다. 그래서 나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은 불가피하게 논이되어야 할 의제라고 생각한다. 

클라리스의 학습을 통한 자각의 과정은 감동이었다. 복지시스템의 전제에서 우리 사회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복지와 교육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의무 교육과 의무 급식은 교육과 복지로 나뉘는 제도가 아니다. 복지이기도 하면서 교육이다. 프레셔스가 매일 자신의 생각을 쓰지 않았다면 부모와의 단절도, 새로운 희망도, 사랑의 소중함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자를 읽지 못하는 한 할머니가 문해교육을 받고 은행에서 스스로 이름을 쓰고 예금을 찾았을 때의 감동은 우주적이다. 자각한다는 것은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클라리스. 다운증후군 딸과 돌이 다 돼가는 아들을 데리고 걸어가는 클라리스의 입가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희망을 보았을까? 사랑을 보았을까? 사회는 이들의 미소를 없애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