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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이든, 실패하더라도 후회없는 길을 걸어야 - <미스터 노바디>

어떤 선택이든, 실패하더라도 후회없는 길을 걸어야 - <미스터 노바디>


모든 생명체는 몇 가지 규칙을 지닌다. 대표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들도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이런 규칙에 의해 모든 물질은 지배받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더 한 발 들어가면 변하지 않을 운명도 어떤 선택에 의해, 혹은 우주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빅뱅의 발발처럼, 예상하지 못한 우연에 의해 규칙이 파괴되기도 한다. 완전한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법칙이다. 

그러나 예외의 가능성이 희박한 일정한 규칙 안에서 우연적 요소가 가미된다 하더라도, <인터스텔라>의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얘기한 것처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혼한 부모의 엄마를 선택하든, 아빠를 선택하든 니모(자레드 레토)의 삶은 정해져 있다. 니모는 이렇게 묻는다. “사랑은 계획대로 되는 걸까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수히 많은 변수에 의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제한적이다. 천사가 인중을 눌러주지 않은 이유로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알게 되는 니모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좌우를 선택하지 않고 가운데 길로 뛰어간들, 니모의 미래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왜냐 하면 이미 니모는 그 중간 길의 운명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여러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 많은 질문들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왜 태어났고, 어떤 선택을 했고, 무슨 사랑을 경험했는가, 그리고 미래는 정해져있는 노정인가, 우연도 필연의 일부인가,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은 결정되어 있는가 등등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이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살아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순간들은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어떤 선택이든 큰 범주의 규칙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지긋지긋하다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뛰쳐나가 다른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지긋지긋하지 않는 회사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요인이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과는 다르게 거대한 자본주의체제에서 기인되는 것이라면 개인의 선택이 근본적인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보통은 다니던 회사를 포기하는 행위를 회피하게 된다. 우리는 평탄치 않은 미래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선택을 통해서 다채로운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선택하는 과정까지의 복잡성과 외부적인 조건들에 의해 그 여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지점이 내가 이해한 이 영화의 메시지다. 

영상미와 편집은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미덕인 것 같다. 어떤 장면이든 허투루 찍은 티가 나지 않았다.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디테일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미셀 공드리 감독의 영상미가 부드러움을 추구한다면 자코 반 도마엘은 디테일함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편집이 복잡하더라도 감각적으로 수용 가능했던 것 같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제8요일> 이후 20년 만의 작품이었다. 공백이 컸음에도 감독으로서 영화적 감각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미스터 노바디>를 찍기 위해 20년을 벼려 온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물리학과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다보니 관객의 입장에선 단박에 영화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또한 화면의 템포가 빠르고 스토리가 여러 갈래로 꼬여 있음으로써 스토리의 맥락을 짚기가 어려웠다. 순차적으로 이해를 하면서 넘어가야 재미가 더해질 텐데, 감독은 ‘나를 따르라’며 일관되게 밀고 나간 느낌이었다. 메뉴가 많은 식당에서 오히려 하나의 메뉴를 선택하기가 더 어렵다. <미스터 노바디>는 메뉴가 많은 식당과 같았다. 

살다보면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깊은 고민에 쌓이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 해 걸어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선택의 기준이다.